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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묘 및 신도비

조광조묘 및 신도비 전경사진

  •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166호
  • 지정년월일 : 1986.5.31.
  • 시대 : 조선 선조18년(1585)
  • 소재지 :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상현동 203-2)
  • 규모 : 높이 244cm, 폭 93cm, 두께 34cm
  • 재료 : 토분 및 석물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묘소는 수지 상현동(서원말)에 있다. 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된 이씨(李氏)와 합장한 것이다. 묘 앞에는 대리석으로 묘표와 평상석·향로석·좌우에는 망주석·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선조18년(1585)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이며 높이 244㎝, 폭 93㎝, 두께 34㎝의 규모이다. 장방형 비좌 에는 국화문이 조각되어 아무런 치장이 없는 품격 높은 비신과 조화를 이루었다. 비 앞면 상단에는 전자(篆字)로「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 (文正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이라 횡서(橫書)했다.

신도비문은 노수신 (盧守愼)이 짓고, 이산해(李山海)가 글씨를 썼으며, 김응남(金應南)이 전(篆)을 썼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종때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김굉필 에게 수학(修學)하였다. 중종 5년(1510) 진사, 중종 10년(1515)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뒤 전적(典籍)·감찰을 역임하였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케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케 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케 하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여 훈구(勳舊派)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의 남곤 (南袞)·심정(沈貞)등이 무고(誣告)하여 능주(凌州)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사사(賜死)되었다. 선조(宣祖) 초에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문집으로 「정암집(靜庵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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