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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장군묘

이종무 장군묘 전경사진

  •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25호
  • 지정년월일 : 1975. 9. 5.
  • 시대 : 조선 세종 7년(1425)
  • 소재지 :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 79
  • 소유자 : 사유(私有)
  • 규모 : 높이 2m, 폭 3.5m, 세로 4.7m, 30
  • 재료 :토분 및 석물

이종무(李從茂) 장군의 묘소는 광교산(光敎山) 기슭 능밑에 있다. 장수이씨(長水李氏) 향후공파(襄厚公派) 후손들의 고증에 따르면, 한 때 이장군의 묘소가 실전되었다가 문중의 기록을 근거로 가까스로 다시 찾았다고 한다.

현재 묘소는 사방 13척 정도의 장방형 호석(護石)이 둘러진 위에 봉분이 마련되었고, 정면에는 상석, 향로서과 묘표(募表)가 있다. 상석은 근래에 마련된 것이며, 묘표는 본래의 것으로 보이는데, 거의 마모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렵다. 단지 비문 가운데[장자승 평입(長子昇平立)]이라는 글씨만 판독이 가능하다.

묘표의 크기는 폭 40cm, 높이 100cm, 두께 17cm 이다. 좌우에 문인석이 있고, 1975년에 후손들이 새로 세운 묘비가 있다. 본래 구비(舊碑)가 있었다고 하나 언제 소실되었는지 알수 없다. 이종무 장군의 묘역은 1975년 9월5일,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25호로 지정 되었다.

이종무(1360~1425)장군은 어려서부터 활쏘기, 말타기에 능하였다. 고려 우왕 7년(1381)에14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었다. 그의 일생은 거의 왜구와 싸움으로 점철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태조 6년(1397) 옹진만호(甕津萬戶)로 재임 중 왜구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가 되었다.

정종 2년(1400)에는 좌명공신(左命功臣) 4등으로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다. 그 후 좌군총제(左軍摠制)를 거쳐 남양(南陽),수원등지의 조전절제사 (朝戰節制使),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등을 역임하였고, 삼군도체 찰사(三軍都體察使)가 되었다. 이 장군의 공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대마도 정벌이다. 세종 1년(1419)전함 227척을 동원, 군사 1만 7천명을 거느리고 마산포를 출발, 대마도로 진격항 적선 100여척을 빼앗는등 전과를 크게 올리고 개선하였다. 그 후 찬성사(贊成使)에 승진하고 장천부원군(長川俯院君)에 봉해졌다. 용인시 수지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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