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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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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림묘

황림묘 전경사진

  •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40호
  • 소재지 :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14
  • 년도 : 1597년

공신(功臣)으로 예장(禮葬)된 분묘이다. 장명등은 없으나 방형(方形)의 호석분(護石墳)인 것으로 보아 공신으로서 예우된 분묘임을 알 수 있다. 고기동 북쪽 저수지변에서 서쪽으로 마주 보이는 이 분묘는 먼 발치에서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드는 분묘로 1983년 당시 박한철 수지읍장과 이인영 문화원장이 현지를 답사하고 공신 분묘임을 확인 함으로서 후에 용인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분묘 앞의 묘표에 수충익모광국공신(輸忠翼謨光國功臣)이라 새겼다.

16세기 말에 축조된 이 분묘는 앞쪽 정 중앙에 묘표를 세웠는데 여타의 묘표가 우축에서부터 비명(碑銘)을 시작하여 좌측에 배위(配位)를 기록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중앙 좌측으로부터 <수충익모 광국공신 정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사 오위도총관 의창군 황공지묘(輸忠翼謨光國功臣 正憲大夫 吏曹判書 兼 知經筵 義禁府事 五衛都總管 義昌君 黃公之墓)>라 새겨 시신이 있는 쪽으로 글자가 배열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 묘표(墓表) 하단에 기단석을 두었고 기단 아래에 혼유석과 상석을 배열하였으며 상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마주석을 세웠고 마주석과 직선을 이루는 바깥쪽에 문인석을 배치하였다. 특히 이 분묘의 문인석은 수작이다. 와룡관 아래의 이목구비는 잘 정제되어 있으며 시신을 지키고 있는 문인석으로서 근엄, 정숙한 모양은 표정이 살아있는 듯 한 느낌을 주고 있다.

홀을 받쳐 든 양손의 손톱 모양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문인석은 16세기에 조성된 석조물이 아니라 영.정조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석조물로서 원숙한 미의 경지에 도달되어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황림은 선조11년(1578) 종계변무 주청사로 서장관 황윤길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온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에 이른 인물로 선조 30년 정유(1597)10월 24일 81세를 일기로 하세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담당부서 :
자치행정과
전화번호 :
Tel : 324-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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